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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상 속 으 로

카이스트 , 그들이 키우는것이 학생인가 기계인가?


카이스트, 네명의 학생에 이어 교수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카이스트가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다. 카이스트만의 징벌적인 등록금제도와 영어수업이 그중에서도 가장 문제로 제기되며 학생들의 스트레스와 잇단 자살의 원인으로 비춰지고 있다.


카이스트의 교육방식을 보면 솔직히 그들이 교육기관으로서 자격이 있는지가 의문이다. 우수한 인간을 양성해야 하는 대학이 좋은 기계를 만들어내기위해 발악을 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우리는 항상 그 무언가가 되기전에 인간이 되라고 한다. 그런데 말뿐이다. 정작 학생들의 인성교육엔 관심이 없고 잘 작동하는 경쟁력있는 기계를 만들어내기에 급급하다.


아무리 훌륭한 기계라도 하나의 작은 부품이 고장나면 작동을 멈추게 된다. 즉 사망이다. 이때 그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기계는 더이상 기계로서의 역할을 할수가 없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다르다. 손 하나가 없어도 팔 하나가 없어도 심지어 사지가 다 없다해도 인간으로서 이 사회에 유익한 존재로 자신의 역할을 할수가 있다.대뇌의 활동만 멈추지 않는다면,....

만일 카이스트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기계가 아닌 인생의 도리를 배워가는 인간이였다면 이처럼 단기간에 4명이나 자살을 하는 사건이 발생을 하지 않았을것이다.

한 카이스트의 자퇴생이 불행하다면 떠나라고 한 글이 인터넷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솔직히 나는 이 학생의 이견에 동의다. 불행하다면 떠날줄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는 행복이라고 생각을 한다. 명문대에 입학하는 이유도 공부를 하는 이유도 모든것이 행복을 위해서다, 설사 오늘은 아니라도 내일이 행복하다면 그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할수도 있다. 하지만 내일마저 기대할수가 없다면 굳이 그 곳에서 청춘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카이스트가,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왜 한낮 대학따위에 학력에 자신의 인생을 올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바보빅터, 빅터는 73이라는 하나의 숫자에 속아서 17년을 바보로 살았다.주변에서 바보라고 하면 스스로도 그에 수긍해왔다. 결국은 자신의 IQ가 173이라는것을 알았을때 자신이 바보가 아닌 천재임을 알았을때 그는 가슴을 치며 통탄을 했다. 자신이 진정한 바보였다고, 하나의 숫자에 속아 17년을 바보로  살아온 빅터가 바보가 아니라면 이 세상에 바보는 없을것이다.

사실 우리는 가끔은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 자신이 바보가 아닌지, 나 자신이 바보로 살아가고 있지 않는지, 세상의 그 누구도 나를 바보로 만들지 못한다. 나 자신이 바보가 아닌 이상, 마찬 가지로 세상의 그 누구도 나를 기계로 만들지 못한다. 나 자신이 기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이상,,,,

학생을 인간이 아닌 기계로 만드는 카이스트, 그것은 단지 카이스트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전체의 문제이다.

선진국을 웨치는 정부, 글로벌을 웨치는 기업, 자식이 용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 엄친아 엄친딸을 웨치는 언론, 그리고 명문대, 대기업만을 고집하는 학생들 그 누구 할것없이 문제를 만들어내는 장본인이고 피해자이다.

카이스트 , 4명의 학생의 잇단 자살, 그 누군가의 책임을 묻기전에 스스로를 한번 돌아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