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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패] 천출 천둥이에게 연모의 정을 느끼지 못하는 동녀, 속물이 아닌 하나의 시대상이다~
방랑객^^
2011. 4. 12. 09:46
드라마 짝패, 4명의 주인공이 드디여 운명의 소용돌이속에서 서서히 자신들이 찾아가야 할길들을 찾아가고 있다.
막순이로부터 천둥이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토설을 받아낸 김진사는 분노의 눈물을 흘린다. 막순이의 얼굴에 탁주를 던져보지만 마음속의 분노는 사그라들수가 없다. 양반의 자식으로 일개 유모에게 그것도 본인의 믿음을 한가득 안고 있던 유모가 아들을 거지움막으로 보내 온갖 고생을 하게 했다는 사실은 김진사로서는 참을수 없는 모욕이였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일은 천둥이가 아들이라는것을 알면서도 어쩔수 없다는 현실이다. 천둥이를 되찾아온다면 가문의 망신은 물론이고 그동안 애지중지 키워온 귀동이가 마음에 걸린다. 낳은정이 크다지만 키운정이라 하여 어찌 작다고 할수 있을까? 게다가 성품이 착하고 강인하며 의를 아는 진정한 사내대장부다. 부모로서는 혼탁한 세태에 아부하지 않는 아들이 가끔은 괘씸하지만 한편으로는 기특하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아들을 내쫗을수도 없는것이 현실이다. 귀동이와의 부자의 정, 그것을 일순간에 버릴수도 없다.
뒤바뀐 운명을 알고 방황하고 죄책감에 허덕이는 귀동이, 천둥이를 위해 사랑하는 여인마저 포기하고 그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귀동이의 행동이 기특하고 안쓰럽다. 하지만 피줄을 속일수 없는법, 김진사는 천둥이를 위해 동녀를 찾아간다. 아들에게 적어도 사랑하는 여인과 인연을 맺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비록 아버님이 죽고 가족이 몰락을 하여 시정잡배들과 흥정을 하며 한낮 천한 장사치로 살아가지만 양반가 규수로서의 마지막 자존심만은 지키고 싶다. 그녀가 속물인것은 아니다. 그 시대 사대부와 체통있는 양반가의 보편적인 현상이고 지금도 종종 볼수 있는 일이다. 만일 동녀가 아무런 갈등도 없이 거지 움막에서 자란 천둥이와 함께 산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막순이가 아들을 바꿔치고 아들에게 꼬박꼬박 존대말을 써가면서까지 아들의 운명을 바꿔놓으려 노력을 하고 서로가 모자사이임을 알고 서도 아들에게 꼬박꼬박 존대말을 한다는것은 그 시대의 신분제도가 얼마나 심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록 양반제도가 점차 붕괴되여가는 시기라고는 하나 몇백년을 이루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신분의 벽을 하루아침에 허물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귀동이를 향하는 동녀의 마음이 단순한 신분에 의한 사랑일지도 의문이다. 귀동이는 천둥이에 비해 뒤지지 않는 충분히 훌륭한 인품과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한 여자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라면 김진사가 아들이 바뀌였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 사실을 천둥이에게 말하지 못하고 망설일 필요가 없다.
자신을 피하는 귀동이를 기다려 모든것을 털어놓는 김진사, 귀동이를 책망하기 위함이 아닌 아들의 마음속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주기 위함이다. 귀동이에게 그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너는 내 자랑스러운 아들이라고 말하는 김진사, 그것이 귀동이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어머니인 막순이를 찾아가 패륜을 저질렀다고 분노를 표출하지만 막순이 또한 어쩔수 없다. 아들이 남부럽지 않게 살게 하려면 그 밖에 더 방법이 없다.
천둥이와 귀동이의 운명을 뒤바꿔놓은 막순이, 천둥이의 신분에 사랑이라는 생각자체를 가져보지도 않은 동녀, 어린시절 연모했던 귀동이를 증오하는 동이, 그리고 혼탁한 세상에 하나의 경종이 되기 위해 총을 든 강포수와 그들의 극단적인 방식을 비난하는 귀동이 ,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주인공들이다. 조선시대 말기라는 하나의 시대배경속에서 그들에게서 누가 옳고 그름을 가리려 한다면 그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저 세월의 소용돌이속에서 그에 저항하고 순응하고 비관하고 반항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모저모를 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떠나서 짝패는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는 구한말 하나의 시대상이라고 보는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